2008.11.24(월) 93일전 / 링컨센터 앞 스타벅스에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다.



 시야보다 넓은 유리 창 너머로, 반짝이는 링컨센터를 바라보며 스타벅스 안에 앉아있다.

 비가 내린다. 7시경에 이 자리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었는데 우산 쓴 사람들이 창밖으로 하나 둘 지나가기 시작한다. 비가 오나보다 하는데 눈앞으로 우산을 쓰지 않은 금발의 단발머리 여자가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밝게 웃으면서 지나간다. 비가 정말 오는 것인지 알려고 하늘을 보았는데 깜깜한 하늘이라 비가 오는지 알 수가 없다. 땅을 보았더니 빛나는 아스팔트 위로 비가 온다. 다시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로등 바라보니 동그랗게 밝은 등불이 닿는데 까지만 비가 보인다.


 아, 여기가 New York이지. 여유롭게 동네 스타벅스에 내내 앉아,

비가 오는데 우산 없이도 서로 다정스레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웃는 얼굴의 노부부 커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이곳에서의 큰 행복이다.

 왼쪽 옆으로 내려다보니 아저씨 세분이 소파에서 잠이 드셨다. 그 그림이 나른하고 평온하다. 뉴욕의 여유로운 늦은 저녁. 여기에서의 나는 우산 없이 집을 나왔는데 비가와도 조급하거나 불안하지가 않다. 늘 그렇듯이 이곳에서 무엇이 다른가를 보면, 사소하고 소소한 자유로움이다. 날씨에 상관없이 옷을 내키는 대로 입고 집을 나서거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보는 것, 길바닥에 앉아 수다를 떠는 중학생들을 보는 것, 길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테이블을 나눠 쓰는 것... 돌아보면 참 사소한 장면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오늘은 그동안 놓쳐버린 글을 써두어야지 싶어서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마음은 오늘만큼은 꼭꼭 접어두고, 근처의 커피숖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노트북을 챙겨 나와 집 앞을 나서 길을 걷는데 어느새 잎이 반도 남지 않은 가로수들이 보였다. 낙옆이 바람에 날려 무릎까지 흩날렸다. 그 장면과 함께 몇 주 전만해도 가을이 아름다워 감탄했던 그 가로수들이 오버랩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고 있구나. 집을 나서는 아침, 돌아오는 늦은 저녁 얼마나 나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아름다운 나무들인가. 걷다보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 다시 걷기 힘들 거리 하나하나. 집에서 카페까지 짧은 길을 두고, 돌아 돌아 걸었다. 조금 더 조금 더 걷고 싶었다. 이쯤해서 돌아가야지 생각하면 발 앞 한 블록 앞의 길은 내가 살면서 다시 밟기 힘들 것만 같아서 조금 더 걷다가 길을 돌아갔다. 자주 들렀던 링컨센터 맞은 편 Barns & Noble은 이제 이사가면 자주 오기는 힘들겠지 하고 생각하니 더욱 애틋했다. 그러다가 두세 달 뒤 한국에 돌아가면 자주가 아니라, 살면서 다시는 오기 힘들겠지라는 생각까지 확장되니 마음이 아려왔다. 며칠간의 여행이 아니라 짧게라도 살다가는 것은 이러한 아픈 애틋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혜진 언니가 반장님과 수진언니에게, ‘문득 생각하는데, 얘는 곧 떠날 거잖아요. 이제 막 같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얘도 곧 갈 애구나 생각하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하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나의 아쉬움을 더 말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왔다가는 사람들을 늘 떠나보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마 나의 Barns & noble도 그런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좋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너도 곧 갈 사람이잖아.’하고 벌써 내게 정을 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핑계대지 않는 삶’이라는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New York에 온 지 언 70일이 되었다. 헤아려보니 앞으로 93일 정도 남았다. 반보다 조금 더 남은 셈이다. 뉴욕에 와서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하루는 엄마가 말씀하셨다.

 “ 인생이 30년이야.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하고 살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생각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6개월은 인생에서 짧지 않은 시간이야. 다른 것 하나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와.”

 인생이 30년이라. 엄마 말씀이 무엇인지를 대번에 알겠다 싶었다. 덜컥 했지만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 진심이 담긴 한마디 말씀이었다. 실상 그렇게 살 수 있는 인간의 삶이 30년이 채 못 될 것이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사람이 학교 다니고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될 때까지는 대부분 보편적으로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살아가기 마련이고, 그나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20살이 넘으면 스스로의 삶을 깊이 생각해볼만한 시간과 성숙에 이르지만 보통은 눈앞에 닥친 취업이나 입시로 인해 갈팡질팡 방황하기 마련이다. 이어 몇 번의 직장생활 혹은 학업을 지속하다보면 30대가 가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정신없이 뒷바라지 하다보면 40대. 그 때가 되면 꿈 많던 지난 날 어디로 갔나 싶고, 사람들은 자신을 아저씨나 아줌마라고 부르고, 스스로도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이 들 테고, 내가 인생을 반 정도 살았나보다 돌아보면서도 쇠하여지는 몸을 스스로 느끼면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조하시며 딸에게 진심어린 한마디 말씀을 하시는 엄마의 인생 30년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내가 아는 엄마의 인생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볼 때, 엄마가 자신 이외의 사람들의 삶에 얽혀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실 수 있었던 시간들을 추려보면 얼마나 될까 싶어 마음이 아려왔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는 ‘한 사람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인 것이다. 

 키우고 키워도 어리기만 한 딸이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하면 놀랄까봐 ‘인생이 30년이다.’이라고 넌지시 말씀하셨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 마음에,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인생과도 같이 덧없이 짧을 인생에서, 담은 6개월이라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그래, 너하고 살고 싶은 곳에서 너하고 싶은 경험 네 힘이 닿는 한, 모두 다 하면서 살아보아라.’ 하셨을 것이다. 그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마음이 울컥해 눈물이 올라왔다. 집 걱정이며 드는 돈이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한 순간도 후회 없이 너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나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엄마의 마음. 인생에서 시간을 뚝 떼어서,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시간’을 누려보는 경험, 그것은 엄마가 살면서 누려보지 못한 특별한 시간이며 그래서 사랑하는 자식에게 꼭 주고 싶었던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인생이 30년이라면 이곳에서의 6개월은 내 인생의 60분의 일,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유의미하게 큰 조각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알다시피 이렇게 다른 어떠한 사람이나 환경을 신경 쓰지 아니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도하며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단 6개월일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이곳에 와서 하루하루 참으로 열심히 지냈다. 내가 하루하루를 이렇게나 설레는 가슴을 마음에 지니고 열정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던가 싶을 만큼 나는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지난날, 학교에 다니면서 혹은 짧게나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를 온전히 내 시간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하루 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곤 했지만, 하루를 온전하게 내가 쓴다고 하더라도 나의 하루는 길지 않았다. 사람이 항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제 멋대로 상상을 하며 잘못된 추측을 답으로 놓고, 그것을 현실에 대한 위안으로 삼으며 살기 마련이다. 마치 내가 가지 않은 길 그곳에, 자신이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못 다 이룬 꿈들이 모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며 내가 이 길에서는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지만 저 길로 간다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후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이 길에 없는 것이 저 길에 모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접 그 길을 가봐야, 평생 추측만 하며 내 인생 한탄케 만들었던 그 길에 대한 환상을 접고 현실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


 현실은 나의 막연했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도- 이른 아침 눈을 뜬 이후로, 해가 금새 저물고 몸의 에너지가 다하고, 곧 새벽이 되어 곧 아침이 올 것이기에 내일을 위해서는 잠을 자두어야 하는 시간까지 - 하루종일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을 쉬지 않고 한다 해도, 하루는 너무나 짧은 것이었다. 살기 위해 하루에 세 번 무엇을 챙겨먹어야 한다는 것까지 성가시게 느껴질 만큼 나의 마음과 몸이 동기화 되어 있었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단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었다. 그간 ‘내가 매여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없다면 나의 하루는 길 것’이라는 나를 위로시켜주었던 막연한 환상은 두려워하던 대로 현실이 아니었다. 나의 하루는 내가 내 시간으로 온전히 다 쓴다고 해도 덧없이 짧기 만한 것이었다.

     

 뉴욕은 하나의 작은 세상과 같았다. 세상을 모든 요소들을 응집해놓은 하나의 미니어처 도시와 같았다. 지구 안에서는 지구 전체를 볼 수 없고, 지구인으로서 지구 안에 산다면 자전과 공전하는 지구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는 우리 삶의 모습의 전체를 볼 수 없으며, 내가 속하여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막연히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삶의 자리를 완전히 떠나온 이곳에서는 나의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내 인생 전체에서 6개월이라는단위시간을 떼어네어 독립변수로 놓고 살아보는 기회를 통해 인생의 시간을 가늠해보고 있다. 그렇게 하나의 응집된 세상의 축소된 모형과 같은 뉴욕 안에 살면서, 내가 속한 실사크기의 세상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했다. 우리가 막연히 기대하며 살아온 지구의 어딘가에 존재할 가장 대단한 세상의 모습, 내가 향유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그대로 증명해 줄 멋진 신세계, 그것의 상징이 뉴욕이라면 그것은 기대보다 초라했다. 이것이 사람이 이룬 세상 가장 위대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참으로 덧없이 느껴진다. 이것이 정녕 끝이라면, 태양아래 해변가 모래로 빚어만든 조형물이 바스라지듯이, 그 덧없음에 나 자신이 사그라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치 평생을 쫒아 따라간 무지개를 손에 쥐었을 때의 허무함. 아이러니하게도 무지개와 파랑새는 '인간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 인간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상징하기에 인간이 영원이 갈망하게 되는 존재로 등극할 수 있었음이 이곳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꿈은 성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들은 하나, 인간을 결코 이룰 수 있는 꿈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은 인간이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라 인간이 이미 이루어놓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은 틀림없이 대단했다. 내가 이 도시의 모든 면면을 사진으로,  이 도시에서의 모든 경험과 느낌들을 글로써 다 담아낼 수 없을만큼 대단하고 버거웠다. 모든 부분의 하나하나가 내게 너무나 압도적으로 인상깊이 다가와 나의 시야의 확장,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들과 그에 수반되는 무수한 감정들을 스스로 소화하기 힘들지경이었다. 도착해서 수 주일동안은 가슴이 뛰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하나 귀한 경험을 놓칠새라, 순간의 감정을 적어두지 못할까봐 잠도 못들만큼 제멋대로 안달복달하는 나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해가지기 전에 원하는 만큼 땅을 밟고 돌아오면 그 모든 땅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 톨스토이의 '바흠'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처럼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금의 나는 많이 편안해졌다. 나는 뉴욕과 친해졌고, 뉴욕에서의 삶 또한 자연스러워졌다. 뉴욕은 더 이상 내가 정해진 시간동안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이곳에서 머물면서, 너무나 대단해서 다 가지고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던 뉴욕이 '그저 수많은 사람이 발붙이고 사는 땅중에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볼 수 없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문화를 다 경험해 볼 수 없듯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듯이,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방대하여, 내가 다 나의 카메라와 나의 노트와 나의 배낭 안에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하며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고, 나의 인생의 배낭이 너무나 작았다.

  나는 뉴욕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뉴욕과 친해져서 뉴욕이 좋아지고 있다. 뉴욕은 아름답기만 한 도시가 결코 아니다, 뉴욕은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이 혼재 되어있는 공간이다. 뉴욕을 맹목적으로 이상적인 곳이라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 위험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성격이 못되먹은 친구도 내 친구라면 다른 좋은 점을 더 봐주고 싶고, 그 녀석의 나쁜 행동을 미워하고 고쳐주고 싶어할 지언정 그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친구일 뿐이듯이 뉴욕에 대한 나의 애정도 그러한 것 같다. 뉴욕은 미운 구석이 많지만 사랑스러운 구석도 많다. 이곳에 있으면서 뉴욕이 선과 악의 박물관 같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박물관에 모아놓은 작품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의 물꼬를 터 나가듯이, 이 도시의 면면이 드러내놓고 있는 극과 극의 표본을 눈앞에 두고, 나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곤한다. 마치 자신의 묽은 삶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라는 생각에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중얼대면서도, 농축된 소설속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가늠해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일 것이다. 삶이 옅은 물감으로 묽게 그린 수채화라면 뉴욕은 현란한 색의 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발라서 그린 그림과 같이 화려하고도 외롭게, 대단하면서도 초라하게 존재하고 있다. 

 기대감에서 실망감으로 다시 기대함으로,  꿈과 소망에서 덧없음으로 다시 희망으로 -
 뉴욕은 나를 계속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통한 나선형의 여정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이 끝나지 않은 무수한 이야기들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道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이 여정을 즐기고 있다. 

 행복하다. 
 그리고 가히 희망적이다.




 작성일 : 11.24(월), 9시 50분경 (뉴욕시간)
 마무리 : 11.25(수), 새벽 1시경 (뉴욕시간)

by 芝恩 | 2008/11/26 13:54 | 스물여섯 뉴욕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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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ony Shin at 2009/01/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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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芝恩 at 2009/02/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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