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날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냥 마음이 들떠 있는 날과 또는 머리 속으로 날아드는 많은 복잡한 생각들로 마음이 위축이 되는 날이다.
뉴욕은 하루는 손님을 맞아들이는 살가운 주인처럼 나를 친근하고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가,
하루는 나를 철처한 이방인으로 몰아 차갑고도 매몰차게 대해버린다.
그런 날은 철저히 이방인이며 약소국에서 온,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Asian girl이다.
잘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젋은 여자.
오늘 점심은 'Woorijip'에 가서 먹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저렴한 한국음식 푸드코트이다. 이것저것 메뉴가 많고, 한국 물가에 비해서는 모르겠지만 뉴욕 음식값을 생각할 때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나는 $2짜리 김치볶음밥을 집어들었다. 아마도 뉴욕에서 가장 싼 점심일 것이다. 나는 별다른 반찬도 고르지 않고 $2짜리 김치볶음밥을 계산대에 내어놓으면서 '이것이 이곳에서 내가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라며 안위했지만 생각해보면 분명 비싸고 양도 적은 다른 음식도 있는 것이 확실하니, 그러한 생각이 든다는 것은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뉴욕에서 값싼 음식을 먹는 자기의 처지에 대한 하나의 자기 위안인 셈이다. 나는 이곳에서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허세로 돈을 쓰며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소비를 할 때에 가장 저렴한 물건에 손이 간다면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돈이 아주 많은 부자 뉴욕커가 양이 적은 점심식사를 고르고 싶다고 해서, 코리아타운에서 $2짜리 음식에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가끔 차이나타운에서만 외식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궁상맞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코리아타운 음식은 다를 게 무엇인가. 가격이 저렴하고 가격에 비해 맛도 있지만,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고, 양은 많지만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없어 미심쩍은 마음이 들고, 종업원까지 불친절하다고 느꼈다면서 차이나타운 음식점을 굳이 고집해야한다면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차이나타운에 대해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면 돈많은 서양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코리아타운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우리네 음식을 대할 때, 대체 속에 뭐가 들었을까하며 오만상을 찌뿌리는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중국이 온갖 벌레를 다 먹는다며 얼굴을 찌뿌리고 무시할 때 (물론 우리는 무시한다고 생각 안하지만, 내 안에 저 깊은 마음의 부정적인 울림을 생각해봐라. 우리는 스스로 편견을 가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가지고 있는 편견이 심연에 존재한다. 우연히 자신이 가진 편견을 발견했을 때에 끔찍하게 느껴질만큼 말이다.) 외국인 또한 우리 한국사람에게 똑같은 표정과 미개인을 대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이다. '너희는 개도 먹고, 번데기도 먹는다면서?'라고 재차 물으면서 그리고 그 표정과 몸짓을 통해 너희들은 너무나 끔찍한 종족들이다 라는 것을 표현하면서 말이다. 우리들은 서로 이미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존중한다는 듯 애둘러 이야기를 좋게 마무리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남은 편견은 이미 깨끗히 비워낼 수 없을만큼 마음의 바닥에 진득하니 붙어있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우리나라, 코리아에게 행해지는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약소국에 대하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건져낼 수 있는 좋은 면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잔혹한 쓰디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지만 말이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무언가 내게만 일어날 특별한 일이 있으리라'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선 날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고 했던가. 'Woorijip'에서 그러한 일이 생겼다.
다서 부끄러운 감정을 들게 만드는 (원하지도 않는 감정이 내게로 들어올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김치볶음밥을 가지고 혼자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맞은 편에 썬글라스를 쓴 세련된 외투를 거친 아주머니 한분이 자리를 잡았다. 영어로 앉아도 되냐고 묻길래 일본인인가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한국여자애 한명과 일본인 세명이 더듬거리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넷다 영어를 잘 못하길래, 나는 그들이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겠거니 했다. 어학연수생으로 보기에는 하나도 어색할 것 없는, 정겹기까지한 인터네셔널 엉터리 영어 대화였는데 앞에 계신 아주머니는 계속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았다.
대화가 진행되던 중 아주머니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