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놀이


 지금, 부산에 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소식들이 내게 들어온 날이 화근이었다.
 쉴 새 없이 정보들 내게 흘러들었고, 
 상반되는 일들이 머릿속에 계속 주입되었고
 이에 여러가지 상충되는 감정을 끊임없이 느낄 수밖에 없어 너무나 괴로웠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다들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디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
 자연 속에서 옛사람처럼 살았더라면 
 내게 결코 한꺼번에 닥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내 품안의 사람들의 죽음
 내 품안의 사람들의 비극
 내 품안의 사람들의 경사
 ....

 옛날 어느 때처럼,

 ' 내 품안의 사람들'의 몫만 감당하는 것이었더라면
 이렇게 지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내 가족, 내 이웃, 내 마을 소식 정도만 감당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이렇게 자주, 중구난방으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며
 슬픈 일도 이렇듯 봇물터지듯 압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레 일어난 일들이라면 나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을터였다.
 그러나 이 또한 비대하게 발전한 현대의 비정상적인 하나의 현상임에 분명했다. 

 여하튼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숨이 막혔다.
 컴퓨터와 TV와 사람들과의 대화가, 내게 망각의 혜택조차 허락하지 않고
 여러사람의 죽음과 슬픔과, 기쁜 일과, 시덥지 않은 가십거리까지 동시에 느껴내라고 
 나를 종용했다.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코와 머리와 온몸이 괴로운 상태로.




 -



 절간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때마다 생각하곤 했었는데
 구실도 없고, 절차도 생각해보면 매우 복잡했다.

 어떻게 가나? 돈을 내는걸까 헌금을 하는 걸까? 돈이 든다면 얼마나들까? 짐은 어떻게 싸가지고 산에 오를까?
 어떻게 누구에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얼마나 있다가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돌아올까?
 부모님이 걱정하시지는 않을까?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

 실질적인 행동은 취해본 적 없지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조잡스럽게 하다가 이내 내려놓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비슷한 상황에서 또 같은 생각을 하고 만다.
 주기적으로 계속 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 3때 꽤 친하게 지내던 삼국지의 장비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웃기기와 애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 친구 황준혁이가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컥한 적이 있다.
 몇 년만에 전화를 하더니 갑자기 존대말을 쓰기에, 무슨 일인가 놀려댔더니
 스님이 되었기에 존대말을 써야한다고 했다.

 고 3때부터 내동생을 '감히'처남이라고 부르더니,
 존대말을 쓰면서도 처남은 내내 안녕하시냐고, 못난 매형이 맛있는 것도 못 사먹인다며
 너스레를 떨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나를 웃겨주었다. 

 그 녀석 해인사에서 수련한다는게 벌써 몇해전이다.
 
 
 시덥잖은 나의 절간 타령이 시작될 때마다
 그 녀석의 얼굴을 함께 떠올리곤 했는데  해인사에 한 번 찾아가야지 생각만하고 가 볼 엄두도 못낸지도 벌써 몇해전이다.


-


 부산에 있는 아빠 집에 와있다.
 가끔 놀러 친구들 데리고 하루 이틀 와 본 적은 있어도
 살러 온 적은 없었다.

 아빠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부산에 계시고 나머지 3일은 서울에 계신다.

 내가 지난 목요일에 내려왔는데 아빠는 이미 서울에 올라가신터여서
 반주일을 연고도 없는 부산 외곽에서 혼자 지냈다.

 그렇게 혼자 있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청소 싹 해놓고 혼자 방에 앉아 있으니
 21층 아파트에 있는 작은 방이
 마치 절간 같다.

 눈 앞으로는 산도 보이고,
 방에는 책상 하나와 작은 서랍장하나 낮은 책꽃이 하나,
 옷가지 몇벌.

 아무도 떠들지도 않고
 아무도 말도 걸지 않는다.

 오랜만에 고요가 마냥 행복하기도 하고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허무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빠른 도시 생활에 나의 이 느린 삶이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그러나 당장은 참 좋다.

 내 어렸을 때 썼던
 외할아버지가 직접 나무 잘라서 만드셨다는
 내 어린시절 외삼촌한테 물려받아썼던 책상을 다시 만나서 너무 좋고.
 당장 읽지 못할 책들 서울 내방에 두고와서 그립고도 시원해서 좋고,

 전화도 인터넷도 없이 몇해를 사신 아빠 덕분에
 고요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 지금 5일만에 옆 동네 마을도서관에서 낡은 컴퓨터를 만지는 중이다.)

 처음에는 밤에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잤는데
 이제는 제법 내집 같다.
 5일만에 아빠를 봤는데 참 행복했다.
 우리 아빠 이렇게 홀로,
 가족들 먹여살리시느라 외롭고 고생하시는 마음
 이제야 조금 헤아릴 것도 같고. 


 
 -


 유미가 당장 올라오라며
 부산을 떨었다.

 나도 영락없는 서울사람이라 여기서 오래는 못살 것 같다.
 있을 것 다 있어도 영 내 동네 같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서 근근히 혼자 사는게 익숙해질까봐 두렵기도 하고,

 아무튼
 당분간은 아빠숙소에서 (아빠는 아빠집이라는 표현이 싫은지, 멀쩡한 아파트를 항상 '숙소'라고 표현하신다.)
 아빠랑 함께 살 생각이다.


 단, 밥은 못해드린다고 말해놨다.

 


by 芝恩 | 2009/06/01 19:06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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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말리꽃 at 2009/06/02 15:35
그래서 부산에 있었구낭~^^
잘 쉬다 오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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